어학이 제공하는 제2의 아동기 (칼럼 1)

언어는 무궁무진한 세계다. 어학이라는 것은 그 세계에 통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라서 거의 마술에 맞먹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모국어인 영어를 정복하고 플랭클린 D. 루스벨트, 존 F. 케네디나 키케로와 같은 역대급 웅변가처럼 자유로이 말을 잘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독특한 숙어, 속담, 명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즉석에서 상황에 딱 들어맞는 속담이나 명언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영웅이었다.

어린 시절, 미국 작가 잭 런던이 매일 새로운 단어 스무 개를 외우고 웅변술을 기르려고 도시의 붐비는 공원에 가서 즉석 연설을 하면서 어휘력과 말주변을 연마했다는 일화를 듣고 깊은 영감도 얻었다.

줄거리를 탄탄하게 짜는 것, 설득력을 최고조로 높일 수 있도록 조리있게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짓고 싶다는 바람이 나에게는 제일 컸다. 완벽한 한 문장이 300페이지 넘는 책보다 힘이 셀 수도 있으니까.

타임지나 ‘뉴요커’잡지를 읽다가 하나의 작품 같은, 정교하게 짜여진 문장을 접할 때마다 감동 받고 공책에다 따라쓰고 ‘조만간 나도 이런 문장을 쓰겠다’는 야심을 품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고급스러운 언어가 갖는 특유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매료된 나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범한 사람부터 유수의 학자까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멍청이 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이 특히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소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글귀를 갈구하는 내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다시 아장아장거리면서 첫걸음을 내디디다가 넘어지는 아이가 돼야 했던 것이다.

바로 전날 철학과 예술 이론에 대해 즉석에서 토론하다가 그 다음날에는 기초 중에 기초인 ‘무…슨…음식…을 가……장 좋아…해요?’와 같은 문장을 온 힘을 짜내 말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언어 배우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력은 물론이고 돈도 들고 평생이 걸리는 작업이라 꼭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모국어가 영어인 미국인 대부분이 이러한 언어를 배우는 과정의 제2의 아동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인 중에는 다시 언어 바보가 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과 함께 전달하고 싶은 격려의 말은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비교적 늦은 나이에 다시 아이가 되는 느낌으로 인하여 생기는 좌절감은 잘 활용하기만 하면 대단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오는 말은 대부분 틀리거나 우스운 소리가 되고 어휘력은 다시 유치원생 수준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서 나만큼 답답하게 느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틀리지 않으려고 문법과 맞춤법, 띄어쓰기를 수십번 확인하고 나서만 말하는 습관이 한국어를 빠른 시간 안에 배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

무서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혹시 틀린 말을 내뱉을까 봐 입이 굳고 아예 어학을 포기하게 되면 나쁜 것이지만 그런 무서움이 틀릴까 봐 수십번 반복하고 확인하는 동기가 된다면 좋은 것이다.

내 경우 처음에는 다시 어린 아이처럼만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너무나 답답했지만 그런 반면 그 속에서 즐거움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미국에서 자라면서 한번도 안 읽어본 만화책을 한국에 와서 한글 배우면서 사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이 많으니까 언어를 몰라도 즐기면서 볼 수 있었고 어린이 역사 책도 많이 사서 읽었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남자들에게는 다시 언어적으로 아이가 되는 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기 쉽다. 다 큰 남자들이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아, 귀여워!’일 텐데 말을 틀리게 할 때와 어색하고 이상하게 발음할 수 밖에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그런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반면에 좋게 보면 상대방한테 금방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내 경우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영어만큼 한국어를 잘 구사하고 싶은 희망을 품고 공부에 몰두했고 다시 언어적으로 아이가 될 수 있는 것의 장점만 보기로 했다.

지금 외국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평생 두 번째로 아이가 되는 것을 창피한 일로 생각하지 말고 내 경우처럼 어렸을 때 놓친, 아이 때만 누릴 수 있는 만화, 동화책, 영어 학습 게임 같은 것을 즐기면서 스스로 시간의 바늘을 돌렸다고 생각하고 즐기시기를.

두 번째 아동기는 일시적일 뿐 조만간 다시 말 잘하는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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