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의 따뜻한 품에 안긴 미황사 이야기 (칼럼 5)

한국어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실 한국에 오기도 전부터 막연한 꿈 하나가 있었다.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절의 통나무 바닥에 앉아서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스님들과 한국식 불교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거였다.
드디어 절 문 앞에 배낭 메고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날은 한국어 공부하기 시작한 지 7년이나 된 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템플스테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과정이 많이 체계화되기 전이었다. 산사 체험할 수 있는 절이 표시된 지도를 보고 전화번호 알아내서 직접 문의해봐야 하는 때였다. 그 지도 보고 일부러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절을 택했다. 땅끝마을에 있는 절이었다. 서울 주변이면 외국인 체험자가 많을 테고 외국인을 위해 영어로 진행하는 유명무실한 과정만 있을 까 봐 일부러 목포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시골 버스 두 번 타고 하루 걸려 아름다운 미황사에 도착했다.
그 많은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드디어 오랜 꿈을 실현시키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마지막 계단 밟기도 전에 먼 곳에서 어떤 스님이 ‘웰컴!’이라고 외치며 내쪽으로 달려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스님은 전부터 영어 연습 많이 하고 싶었지만 그 절이 서울에서 너무 멀다보니 외국인이 거의 안 왔는데 명단을 보고 드디어 외국인이 온다는 사실에 반가웠다고 했다.
영어에서 도망가고 싶어서 지리적으로 가장 먼 절을 일부러 선택한 나로서는 조금 낙담이 됐지만 “이게 첫 번째 수행”이라 생각하고 순순히 영어 연습할 수 있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절 생활은 그때까지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체험이었다.
일단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평소에 그 시간쯤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라서 오기 전부터 가장 걱정되던 일었다. 그러나 좀 하다 보니 생각보다 제시간에 일어나는 게 어렵지 않았고 3시 반부터 산울림으로 번지는 목탁 소리에 눈이 떠져 4시 예불에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그 다음으로 스님따라 자하루에 가서 앉은 자세로 2시간 동안 명상을 했다. 창문이 다 열린 자하루에서 해가 점점 남해의 수면 위로 뜨기 시작하고 깜깜한 바닷물에서 수많은 섬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은 내가 평생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두 시간은 몇 분처럼 빨리 지나갔고 절 생활에서 가장 기다리게 되는 시간이었다.
좌선, 와선, 행선 등등 며칠에 걸쳐서 다양한 명상법도 배웠다. 새벽 4시에 일어나고 보통 자정쯤 자는데도 몸은 정말이지 가벼웠다. 술, 카페인, 고기 등을 금식한 게 한몫했던 것 같다.
얼마 안 되어 스님들 사이에서 내가 영어보다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말이 퍼져서 우리는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세 번째 날 드디어 10년 넘게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스님들과 수행하러 온 사람들과 바닥에 둘러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한국어로 불교의 심오한 개념에 대해서 대화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옛날 수묵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드디어 하산하는 날 스님께 내가 말했다. 여기 있는 동안 마음에 새로운 편안함을 찾았고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큰 도시로 돌아가면 배운 게 다 날아갈까 봐 걱정된다는 말이었다. 스님은 스님도 그래서 도시에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며 이제 한번 와서 지냈으니까 앞으로 어디 가든 어디 살든 절이 영원히 마음에 남아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후로 많은 세월이 지났고 아직 한번도 못 돌아갔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그 후로 오늘까지 아름답고 고요한 미황사가 생각 안 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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